야마다 리키치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얬다. 손이 빨갛게 얼어붙었다. 리키치는 손을 녹이고 싶었지만 피가 잔뜩 묻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옷 위로 대충 문질러 닦았다. 그래도 손에 든 검붉은 물은 지워지지 않았다.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시체가 입을 헤 벌리고 누워 있었다. 팔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악몽이었다. 야마다 리키치가 한숨을 뱉었다. 하얀 숨이 하늘로 날았다가 공중으로 스러졌다. 눈 위에 남은 핏자국은 유독 붉었다. 시체를 파묻어야 할까. 아니, 아니다. 꽃이면 예우는 충분할 거였다. 그러나 눈을 뚫고 피어나는 꽃은 없었다.
그래서 야마다 리키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꽃을 바칠 수도 없고 시체를 묻어줄 수도 없어서였다. 달릴 때 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발자국이 남을 터였다. 눈 토끼를 쫓는 늑대처럼 누군가가 뒤를 밟을지도 몰랐다. 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다 죽었으니까. 리키치는 하염없이 달리다가 문뜩 흰 눈이 빨갛게 물들던 것을 떠올렸다. 눈이 녹으면 피는 연하게 무너져 땅에 스며들겠지. 하지만 시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을 거였다. 아마 누군가가 찾아주기 전까지 그 자리에 남을 거였다. 아니. 어쩌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서 썩어 문드러질지도 몰랐다. 머릿속에서 시체의 뻥 뚫린 눈으로 구더기가 왔다 갔다 하는 게 그려졌다.
리키치는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서 있는 것조차 벅찼다. 발걸음의 끝은 인술학원에 닿아있었다. 누구라도 보고 싶었다. 유년기의, 유년기의 시작이었던 곳이었다. 누군가를 죽일 까만 미래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때. 그리고 그 앞에 코마츠다 슈사쿠가 서 있었다. 입문표를 들고. 리키치는 멍하니 코마츠다를 바라보았다. 코마츠다는 손을 후후 불고 있었다. 코끝이 빨개져 있었다. 어, 리키치 씨! 코마츠다가 활짝 웃다가 리키치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얼굴이며 손이며 옷에 묻은 붉은 자국까지 훑고는 파랗게 질렸다. 코마츠다 군. 리키치가 작게 웅얼이며 다가섰다. 코마츠다가 아, 하고는 리키치 옆에 섰다. 그리고는 리키치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손을 끌어다 잡았다. 손이 코마츠다의 볼에 닿았다.
“리키치 씨, 손이, 너무 차가워요…”
그러는 코마츠다의 볼도 빨갛게 얼어 있었다. 리키치는 문뜩 손이 끈적끈적하다고 생각했다. 손 끝에서, 굳은 시체의 피가 녹아 코마츠다의 얼굴위로 흘렀다. 코마츠다 군, 울어? 코마츠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는 울고 있었다. 그러는 리키치 씨는 왜 그런 표정이에요? 말을 듣는 순간 리키치는 얼굴에 피가 쏠리는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볼이 뜨겁다. 아. 너무 뛰었나 보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야마다 리키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잃을 뻔한 날을 떠올렸다. 코마츠다 슈사쿠가 습격을 받은 날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살해했을 때로부터 삼 년이 지난, 딱 삼 년이 지난날이었다. 꼭 누군가가 복수라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가겠다는 것처럼.
코마츠다 슈사쿠는 목숨대신 눈을 잃었다. 눈이 아물질 않아서 여전히 눈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저러다가 눈이 있던 자리가 무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도 그랬다. 리키치는 매일 말없이 코마츠다 곁에 앉아 있었다. 코마츠다도 말이 없었다. 그건 단순히 리키치가 곁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딱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리키치는 코마츠다 군, 하고 조용히 불렀다. 코마츠다가 작게 웃었다. 이리 와 줘요, 리키치 씨. 리키치는 가만히 코마츠다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가락이 손바닥을 간질이더니, 더 가까이 와달라고, 그렇게 속삭였다. 어떤 표정 짓고 있는지 보고 싶어요. 근데 볼 수가 없으니까…. 리키치는 코마츠다의 손을 제 볼에 올려주었다. 손가락이 얼굴을 더듬고 지나갔다. 리키치는 문뜩 목 끝이 뜨겁다고 생각했다.
“리키치 씨? 뺨이, 축축해요…….”
리키치는 숨을 참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뱃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해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너를 좋아했노라고, 좋아하고 있다고, 하는 말까지도 입술 사이로 삐져나올 것 같아서였다. 코마츠다는 더 이상 리키치의 볼이 축축하지 않을 때까지 얼굴을 쓸어주었다.
날씨가 참 좋아요. 햇볕에 눌려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날이야. 누군가 재잘거렸다. 시끄러웠다. 현진은 충동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후, 하고 숨을 뱉었다. 그는 구름이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현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홍빛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색이다. 구름 한 점 없었다. 기분 나쁜 날씨였다. 현진은 걷기로 했다.
바닥은 아주 파랬다. 신고있던 흰 슬리퍼에 파란 모래가 들어왔다. 이 파란게 모래밭이었나보다. 자각하는 순간 발이 쓸렸다. 금방이라도 살을 뚫을 것 같았다. 기분 나빠. 현진은 걷는 걸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앉은 자리도 까끌거렸다. 옷을 벗어 털면 온통 파란 게 떨어질 것 같았다. 현진은 셔츠를 털었다. 손 끝이 파랬다. 셔츠 끝자락이 모래처럼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셔츠가 짧아져 안에 입은 까만티가 보였다. 현진은 여길 벗어나고 싶다고 문뜩 생각했다. 하얀 슬리퍼가 검푸른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발가락 끝도 그랬다. 이젠 다른 곳으로 가야할 것 같았다. 현진은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구불구불한 길이 있었다. 파란 땅도 다홍빛 하늘도 없었다. 다만 무언가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넌 누굴 만나러 가는 거야?”
오랜지색 새가 현진의 어깨위에 앉았다. 현진은 새의 이마를 톡 쳤다.
“나는 아무도 안 만날거야.”
“그치만 이 숲 끝에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걸.”
고개를 저었다. 날 기다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현진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새가 퍼덕거렸다. 내가 널 데려다줄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새는 계속 떠들었다. 대답해줘도 떠들었고 대답해주지 않아도 떠들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 현진은 한숨을 쉬었다. 마흔 다섯번째로 같은 말을 듣고 있었다.
“모래밭을 지나온거야? 발이 파래. 거긴 어때?”
“그냥 파래. 하늘은 빨갛고.”
마흔 여섯번째 질문에 대답하자 새가 연두색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다. 달콤하고, 찐득거렸다. 꼭 살이 타는 냄새같았다. 현진은 빨간 언덕위에 서있었다. 이따금 재가 날렸다.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여자애가 계속 널 기다리고 있었어.”
“여자애?”
익숙한 냄새가 났다. 여름 냄새였다. 비 냄새, 햇볕 냄새, 그리고 타는 냄새. 머리카락이 그을린 백연두가 서있었다.
“하현진?”
연두가 손을 뻗었다. 손 끝이 온통 까맸다. 현진은 뒷걸음질쳤다. 모래가 밟혀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사각. 어디선가 선풍기소리도 났다. 작고 조잡한 소리였다. 어딘가 막힌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쿵.
둔탁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목과 뒤통수와 허리께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현진은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했다. 눈이 나빠진걸까. 옛날 영화 필름처럼 까만 점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하얀 천장이 유난히 높아보였다. 아. 내가 침대에서 떨어졌구나. 침대가 유독 높아보였다. 현진은 뒤통수를 문지르며 일어섰다. 나쁜 꿈을 꿨던가.
책상위에 미니선풍기가 놓여있었다. 이제는 제법 쌀쌀해져서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오늘은 가디건을 입어야지. 현진은 미니선풍기를 들어 몇 번 돌려보다가 서랍속에 밀어넣었다. 이런 걸 두고 죄책감이라고 하는걸까. 현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잘못한 거 없어. 그래도 오늘은 한 번 들려볼까.
커튼을 활짝 열어도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매미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개미들이 그것들을 물어뜯으리라. 현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매미들의 시체를 생각하면서. 비로소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트장이 차게 식었다. 누군가 물었다. 흙? 꽃 심을 때 바닥에 까는 그거? 그러자 감독이 설명을 했다. 조금은 짜증 섞인 얼굴이었다. 어떤 작품의 오마주라고 했다. 영혼의 굶주림을 표현하고 싶어서 넣은 장면이라는 둥 하는 소리를 하면서 핏대를 세웠다. 눈 먼 친구를 이해하려는 소년의 갸륵한 마음이 담긴 거라고도 했다. 별호는 속으로 뭐 저런 개소리가 다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친구 이해한다고 흙 먹는 또라이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흙을 주워 먹는 애들은 대충 두 분류로 나누어졌다. 첫째, 먹을 게 흙밖에 없다. 둘째,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 별호는 황당해서 아무말 않고 그저 가만히 웃었다. 저 감독이 리얼리티를 추구하기로 유명한 감독이기는 했다. 그 리얼리티가 이정도의 리얼리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와중에, 스텝이 이마를 짚었다.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정도는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지 않아요? 흙같이 생긴 거. 오레오 부순것도 있잖아요. 감독은 진짜 흙이어야 간절함을 담아낼 수 있다고 했다. 별호는 읽어보지도 않은 책의 작가가 싫어졌다. 감독은 원래부터가 호감은 아니었지만 더 싫어졌다. 도대체 왜 교복입고 나오는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별호와 재희가 서로 마주보았다. 저 점에서 의견이 통한 건지 어쨌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일단 눈이 마주쳤다. 별호는 문득 재희를 꽤 오랫동안 못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놀러가거나 초대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일 하면서 좀 봤던 것도 같았는데 최근엔 같이 촬영하는 부분이 잘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타이밍도 아니었다. 그리고 진짜 오랜만이었는지 아니면 체감으로만 오랜만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에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카톡도 했었고.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도 알 수 없었다. 괜찮겠느냐고 재희가 입모양으로 물었다. 별호가 고개를 조금 틀었다. 어설프게 웃으면서.
“괜찮아요.”
정말 괜찮냐는 말을 언뜻 들은 것도 같았다.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카메라가, 켜졌다. 최별호는 흙바닥 위에 주저앉았다. 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 속 최별호는 눈을 질끈 감고 바닥을 더듬거렸다. 눈 먼 것처럼 서툰 몸짓이었다. 감독이 엔지, 했다. 좀 어설프게 해야지. 걘 진짜로 눈이 먼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최별호는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얼마나 꽉 감고 있었는지 눈앞에서 까맣고 하얀 빛이 아른거렸다. 다시 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별호는 자기가 눈 먼 척 하는 연기를 하는 연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별호는 재희의 극 중 이름을 우물우물 말하며 흙을 한 줌 쥐었다. 이걸 입에 넣어야했다. 축축한 흙의 감각이 선명했다. 알갱이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최별호는,
입에 흙을 털어 넣었다. 입에서 알갱이가 느껴졌지만 그냥 꿀꺽 삼켰다.
“네가, 이런 기분이었…….”
숨이 막혀서 다음 대사는 이을 수가 없었다. 감독이 컷, 했다. 그제야 별호는 그것들을 토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