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더운 냄새가 났어요. 끈적끈적하고 비릿하고 역겨웠죠. 토할 것 같았어. 나 혼자였어요. 팔 언저리가 욱신거렸고. 팔이 부러진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깊게 찔렸거나요. 그런 와중에도 나는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어요. 그건 후미코 쨩도 아니고 텟코 쨩도 아니었어요. 그건… 검지손가락이었습니다. 깨끗하게 잘려 있었어요.
사이토 타카마루가 사라졌다. 돌아온 것은 아야베 키하치로와 누군가의 검지손가락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타카마루의 것일 거라고 했다. 적갈색 얼룩이 눌어붙은 손가락 단면에 노란 머리카락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모양이 닮은 것도 같다는 증언도 있었다. 아야베 키하치로는 그 일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손가락이나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사이토 타카마루, 하는 이름만 나오면 입을 다물었다. 다만 얌전히 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친 팔을 까딱이다 이따금 낮게 신음하면서.
“키하치로.”
아야베가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한 지 며칠 째 되던 날, 타키야사마루는 언제까지 그 손가락을 쥐고 있을 거냐고 물었다. 손가락은 썩어가고 있었다.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벌레가 끓고 있었다. 아야베는 벌레가 제 손을 타고 오르는 걸 물끄러미 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무의 등줄기만큼이나 마른 입술이었다.
“내 손으로 땅에 묻을 수 있을 때까지.”
언제나처럼 무심한 투로, 아야베는 고개를 돌렸다.
여름이었다. 손가락에 붙은 살점들이 물러지고 뜯겨나가는 걸 아야베는 보았다. 가끔은 제 살이 같이 물러지고 뜯겨나가기도 했다. 피가 끈적하게 묻어나오곤 했다. 그러나 아야베는 아직 삽을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작은 모종삽이나 겨우 쥘 수 있었다. 타키야사마루는 질겁을 했다. 왜 그걸 아직도 버리지 않는 거냐고. 병문차 찾아온 센조도 움찔했다. 왜 그걸 쥐고 있는 거냐고. 아야베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사쿠는 상처를 치료하려면 손가락을 놓아야 한다고 했다. 아야베는 고개를 저었다. 이사쿠는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곪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 일으켜 세워주세요.”
이사쿠가 아야베의 팔뚝 언저리를 잡았다. 아야베가 조그맣게 아, 했다. 비틀거렸다. 꼭 처음으로 걸음을 떼는 아이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이미 자랄 대로 자라있었으므로 몇 발짝 뗄 때마다 앞에 놓인 것들을 밟고 차고 부숴야 했다. 아야베의 발자국이 금세 붉어졌다. 이사쿠가 괜찮냐고 물었다. 더 쉬어야 한다고 했다.
“묻어줘야 해요.”
그린 듯 선명한 목소리였다. 이사쿠는 침묵해야 했다. 아야베는 모종삽을 찾아달라고 했다. 비 한 방울 제대로 떨어지지 않아 굳은 땅은 너무 딱딱해서, 이사쿠는 고개를 저었다. 저 손으로 굳은 땅을 팔 수는 없을 터였다. 흙은 과자 부스러기처럼 바스스 흩어질 터였다. 그건 무리라고, 이사쿠가 말했다. 아야베가 그럼 화단에 묻어주면 되잖아요, 했다. 이사쿠는 아야베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어서 다시금 침묵했다.
그렇게 해서 아야베가 모종삽을 쥐었다. 식어있던 눈이 까맣게 타올랐다. 아야베는 손가락을 내려놓고 두더지처럼 갈색 흙을 파헤쳤다. 벌레들이 손가락 주위로 까맣게 몰려들었다. 아야베는 땅을 파다말고 손가락을 주워 올려 세게 털었다. 벌레들이 아야베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손등 위에 빨간 점이 남았다. 빨갛게 이빨 자국들이 남았다. 아야베는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거의 뼈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입술을 앙물고 손가락에서 손톱을 뜯어내었다. 살점이 조금 뜯겨 나왔다. 벌레 두어 마리가 같이 찢겨 나왔다. 녹색 즙이 조금 묻어나왔다.
"타카마루 씨."
아야베는 숨을 몰아쉬다가 빈 손가락을 조그마한 구덩이 안으로 떨어뜨렸다. 그러곤 섬을 쌓듯, 성을 쌓듯 흙을 올려 봉우리를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꼭 무덤 같았다.
그 자리엔 노란 꽃이 피었다. 아야베 키하치로의 팔이 완전히 나아졌을 때의 일이었다. 아야베는 매일 꽃에 물을 주었다. 꽃이 활짝 필 무렵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사이토 타카마루의 흔적도,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고. 그나마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조각은 검지손가락이었다고. 그날 아야베는 종일 욕탕에서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아야베 키하치로가 금세 멀쩡해져서 다시 땅을 파고 임무를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야베는 때때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멀쩡해 졌다는 말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타카마루 씨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나는 타카마루 씨와 마지막으로 헤어진 그 장소에 종종 찾아가곤 했습니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며칠이고 찾아다녔어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미용사가 있다고. 검지가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미용사가 있다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정말로 익숙한 뒷모습이었어요. 타카마루 씨였어요. 그런데 타카마루 씨는 나를 못 알아 봤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인양 어서오세요, 했습니다.
나는 타카마루 씨,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목 끝에서 솜 같은 것이 느껴져서, 목이 꽉 막혀서 아무 말도 바깥으로 뱉어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목을 양손으로 꽉 쥐었습니다. 구더기에게 뜯어 먹힌 흔적이며 아직 아물지 않은 팔의 상처가 빨갛게 아렸어요. 시야가 점점 흐려졌습니다. 이상한 기분이었죠. 뺨으로 더운피가 몰렸습니다. 속에서 파도치듯 무언가 울렁이다가 뺨 위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눈가가 축축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은, 후미코 쨩하고 텟코 쨩 밖엔 없었는데. 그래서 쉬고 싶었어요. 이제는 그만 쉬고 싶었어요.
그때 타카마루 씨가, 울지 마요, 했습니다. 나는… 타카마루 씨, 했습니다. 물론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