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백합 <色音> 소설 샘플페이지
1차 창작/글

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당연히 귀신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뒤통수에 닿는 시선은 항상 간지러웠다. 어떤 살의나 악의 따위가 담겨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꼭, 깃털로 발바닥 언저리를 핥아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도끼병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었지만, 나는 엿듣는 게 틀림없이 사람일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척 아까 연주한 곡의 음계를 입속말로 읊곤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휙 돌리길 반복했다. 시선의 주인은 없고 빈 복도만 보였다. 언뜻 치맛자락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장면을 포착해 낸 적은 없었다. 멀고, 음침하기까지 한데,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훔쳐듣고 싶을 만큼 잘 치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잘 치는 애들은 소문이 쫙 나있었다. 졸업하면 어디로 갈 거라든가, 어느 콩쿨에서 상을 탔다든가, 그런 것들. 나는 그냥 고만고만했다. 어디에서나 한 번쯤 들을 법한, 그런 연주를 했다. 해변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별 볼 일 없었다. 정말 좋아서 하는 거였다. 취미생활 정도. 집이 못 사는 것도 아니었고, 여차하면 적당히 전공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신경 쓰였다. 내 연주를 훔쳐듣는 게 누군지 궁금했다. 친구는 누가 정말로 네 연주를 몰래 듣고 있는 게 맞느냐고 했지만, 문 가까이 갔을 때 황급히 멀어지던 발소리가 내 귀엔 선명했다. 나는 연습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아노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돌리곤 했다. 고개를 돌리면 항상 타박타박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엿듣는 사람을 잡아내 왜 몰래 듣고 있었냐고 묻는 건 지나친… 오만일까.

 

보충의 반이 지나도록 나는 그 발소리의 주인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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