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바다를 보여주고 있었다. 바닷물은 지나치게 파랬다. 누군가가 물감배합을 잘못해서 저런 색이 나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거 CG 아니냐고 이호가 물었다. 일호가 영화 볼 땐 조용히 보는 거라며 이호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물속을 걷던 하얀 발이 밖으로 나왔다. 발가락 끝에 물기가 서려있었다. 카메라가 발을 클로즈업했다. 도대체 왜 저런 걸 클로즈업 하는 거야, 하고 이호가 투덜거렸다. 일호가 입 닥치라며 이호의 등을 세게 때렸다. 풍선이 터지듯 탕 하는 소리가 났다. 그 바람에 남자가 여자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수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일호가 미안하다고 했다. 이호가 왜 나한텐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묵살되었다.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뿌렸다.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작은 무지개를 만들었다. 물방울 하나하나 터져나가는 것이 진주목걸이가 흩어지는 것 같아보였다. 여자가 나오자 오수가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이호는 저렇게 물을 뿌리면 짠물이 지 눈에 들어갈 텐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다가 일호에게 발을 밟혔다. 이호가 소파에서 튕기듯 일어섰다. 그러고는 일호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화면이 가려 그림자를 만들었다. 푸른빛이 이호의 등 뒤에서 일렁였다. 오수는 텔레비전을 보려 고개를 내밀었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건 이호의 하얀 가운과 머리카락 그리고 찡그린 얼굴뿐이었다.
“아, 왜! 맞는 말이잖아! 왜 형은 맨날 나만 때려?”
“네가 맞을 짓을 하니까. 속으로만 생각해요, 생각할 줄 몰라요? 너는 뇌가 입에 달렸어요?”
“나는 뭐 말도 못하나! 형은 내 발이 불쌍하지도 않아?”
“넌 네 헛소리를 들어주고 있는 내 귀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 사이사이로 여자의 웃음소리와 남자의 말소리가 섞여 들렸다. 오수가 몸을 일으키더니 아예 텔레비전 앞에 가서 앉았다. 일호는 그러고 보니 넌 설거지도 안하고 영화나 쳐 보고 있느냐며 이호에게 타박을 주다, 텔레비전 화면과 코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앉아있는 오수를 발견하곤 보스, 눈 나빠져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오수는 홀린 듯 화면만 보았다. 이제 남자와 여자가 바나나 보트를 타고 파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보트는 지나치게 선명한 노란색이었다. 그 표면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바람에 날아가 비처럼 다시 바다로 돌아가곤 했다. 지나치게 새하얘서 CG 같은 여자의 목덜미, 그런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있는 남자의 그을린 팔뚝과 등이 차례로 클로즈업 되었다. 모든 것에 물이 서려있었다. 햇빛이 서려있었다. 형이 소리 지르니까 보스가 저렇게 앞에 가서 보는 거잖아, 하고 말했다가 이호가 한 대 더 얻어맞는 소리가, 남자가 여자의 귀에 무어라고 말하는 소리를 묻어버렸다. 마침내 오수가 고개를 두 사람 쪽으로 휙 돌렸다. 일호와 오수의 눈이 마주쳤다.
“어, 어? …미안해요, 많이 시끄러웠지.”
“있잖아요, 일호.”
“응, 형이 많이 시끄러웠지.”
“넌 닥쳐봐요. 왜요, 보스?”
“우리도 휴가 가요. 바다로.”
오수가 낮게 숨을 삼켰다. 저렇게 새파란 바다로 가요. 일호랑 이호, 고생하잖아요. 하루쯤은 꽃집도 닫고, 그레고르도 데리고 섬으로 가요. 사람이 많은 건 힘드니까요. 다나씨랑 스푼 분들도 모셔왔으면 좋겠어요. 다 같이 휴가를 가는 거예요. 바나나보트는 아니더라도 요트를 타고 싶어요. 저녁엔 고기도 먹구요.
일호가 빙긋 웃었다. 이호도 씩 웃었다. 그래요, 그럼. 우리도 휴가가자. 보스가 말한 대로 바다도 보고 고기도 먹고 해요. 아니지, 저녁은 내장탕이지, 하고 이호가 말했다. 일호가 넌 제발 닥치라며 다시금 웃었다. 오수도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