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찾아왔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나는 선풍기 앞에 딱 붙어앉아 펜을 만지작거렸다. 손이 금세 축축해졌다. 매끄러운 펜의 표면이 미끄러워졌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이 날씨에 에어컨도 못 틀게 하냐. 이렇게 더운데. 문제집을 풀 기운도 나지 않아서 그대로 드러누웠다. 바닥조차 온돌처럼 뜨끈한 것 같았다. 휴대폰을 잡았다. 잡자마자 손 끝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현이었다. 지금 집 앞에 있으니까 문 열라고, 수화기 너머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나는 티셔츠를 말아올리고 비척비척 걸어나갔다. 넌 비밀번호도 알 거면서 왜 문 안 따고 들어오냐. 삑,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현이 가만히 나를 보다가 배를 쿡 찔렀다. 덥냐? 더워. 뒤질 것 같아. 현이 내 팔을 잡았다. 손이 서늘했다. 혼자만 겨울에 다녀온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 현은 웃으며 에어컨 틀어놓고 있다가 왔다고 말했다.
어쩌냐. 우리집은 엄마가 에어컨 못 틀게 하는데.
뭐 어때.
어떻긴. 난 더워서 돌아가시겠구만.
우리는 소파 앞에 선풍기를 바짝 붙여놓고 앉았다. 현이는 자연스럽게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나는 그걸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티비에선 시답잖은 얘기들만 나왔다. 지루했다. 그런데도 현이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현이가 먼저 무어라 한 것 같았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더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이마를 쓸어주었다. 이마가 언뜻 땀에 젖어있는 것 같았다.
야. 우리 그냥 에어컨 틀자. 안 그러면 진짜 익을지도 몰라.
엄마한테 혼난다며.
알게 뭐야. 안 들키면 됐지.
현이가 일어섰다. 나는 커튼을 쳤다. 커튼은 왜? 저거 창문새로 바람 다 나가잖아. 에어컨이 켜졌다. 실내온도 18도. 엄마가 알면 등짝이 벌겋게 될 터였다. 그건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원해졌다는 게 중요했다. 찬 바람 덕에 땀은 금방 식었다.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팔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현이가 물었다. 추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현이가 다시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누워선 날 올려다보다가 팔을 잡았다. 이번엔 서늘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가락이 팔 안쪽을 쓸어왔다.
너 닭살돋았어.
나도 알아.
현이가 나를 보다가, 티셔츠의 목부분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짧게 입술을 부볐다가 떼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끔 입을 맞췄다. 유치원때 그랬듯, 그렇게. 생각해보면 남자애들끼리는 뽀뽀같은 거 잘 안하지 않나. 우리는 가끔 했던 것도 같다. 그러면 호두형이 뭐라고 했더라. 알게 뭐야. 나는 그냥 푸스스 웃었다. 징그럽게, 하면서도 입을 맞춰주었다. 그래,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니들 사귀냐? 글쎄. 문뜩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파 아래 바닥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세상이 돌고 있었다. 여기 우리만, 이렇게 멈춰있었다. 지금 이게 뭐지? 뭐 하는거지? 뭔가 생각하려는 데 현이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 하는 순간 혀가 치고 들어왔다. 툭 하고 뭔가 끊기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위로 쓰러지듯 올라탔다.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야. 고개 좀 돌려봐. 으, 그렇게 하면 다 보이는 데에 남잖아. 그게 알게 뭐야. 배를 쓸어오는 손이 간지럽다. 나는 허벅지를 쓸어주다가 현이의 턱에 입맞췄다. 현아. 현아. 원두야. 그냥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귀에대고 속삭였다. 이게 뭐지. 뭐긴 뭐야. 알게 뭐람. 머릿속에서 뭔가 왱알왱알 울렸다. 현이가 내 목젖 위로 입맞추고 있었다. 손이 한 뼘, 두 뼘. 배꼽 아래로 두 뼘.
그 다음에, 우리는.
그래. 같이 샤워를 했던 것 같다. 현이는 집에 돌아가고, 나는 에어컨을 끄고. 침대위에 가만히 누워서 현이를 생각했다. 우리가 뭘 했지?
아,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여름이 찾아왔다. 이번 여름은 지나치게 더워서 가만히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삑,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