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토, 나의 죽음
1차 창작/글

죽음이란 갑작스러운 이주 같은 것이다. 누군가를, 어딘가를 떠나야하는 것. 그동안 쥐어왔던 것들을 놓아야하는 일.


클로토 페리는 언제나 남겨지는 사람이었다. 떠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겁이 많은 이에게는 그런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 클로토에게는 어디론가 간다는 것이 돛 없이 밤바다를 항해하는 것처럼 막막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안전하기를 택했다. 실패했던 건, 실패할 것 같은 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죽을 만큼 위험한 짓을 굳이 나서서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폐병원엔 발도 들이지 않았을 텐데.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일 같은 건 싫은데. 어떻게 준비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무서운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두려움을 누르고 움직이려고 했다.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원래대로라면 뒤에 숨어 상황을 관망했을 그는,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끄러 달려들었다. 목덜미가 뜯길 거라고는 예상도 못한 채로. 사람이었지만 더는 사람이 아닌 것의 이빨이 그의 동맥을 끊어놓았다. 어지러움과 당황스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순식간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 우스갯소리. 세상이 흐려질 때 클로토 페리는 그런 말을 떠올렸다. , 여기 오지 말걸. 괜히 열 내지 말걸. 그런 의미 없는 후회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의식이 사그라들면서 고통도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클로토 페리의 앞에는 피 흘리며 쓰러진 그의 몸을 끌어안고 이름을 부르는 애쉬 서머스가 있었다. 찢긴 채로 널부러진 스카프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피가 비현실적으로 고여있었다. 괜찮냐는 물음에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모르타가 눈물을 떨어트리는 것을 지켜봤다. 달래줄 수 없었다.

불행히도 그는 떠나는 법을 몰랐다.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멈추고 뇌가 정지했지만, 클로토 페리는 여기에 있었다. 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싸늘한 제 육체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준비하지도, 계획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유서도 없었다. 당황하는 클로토와 달리, 클로토의 시신은 눈을 감고 있어 제법 평온해보였다. 오히려 그의 몸을 꽉 붙잡은 손이나, 황망한 얼굴 같은 것들이 이상했다. 클로토는 자신이 죽었다면 누군가 데리러 오게 되는 건지, 아니면 이곳의 귀신들처럼 여기에 묶이는 건지 생각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데리러오지도 여기 묶이지도 않았다. 촛불이 꺼지고 사람들과 함께 빠져나갔을 때, 황망한 기분마저 들었다. 정말 끝에서 이렇게 됐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클로토는 축 늘어진 자신의 손 위로 화상자국으로 가득한 손이 덮였는데도 토닥여줄 수 없다는 것에서 자신의 죽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모르타와 몇 년간 쌓였던, 못 다한 이야기를 다신 할 수 없을 거라는 것도 뼈져리게 느꼈다. 클로토 페리는 제 이름처럼 영원히 과거에 남게 될 거라는 것도.


클로토는, 어차피 과거로 남을 거라면 제 육체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제 마지막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고 싶었다.


장례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런 건 잘 몰랐다. 슬퍼하는 시간을 가지자는 모르타의 목소리를 가만히 곱씹으며 제 목덜미를 매만지는 게 고작이었다. 육체가 탈 때는 조금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의자 하나를 꽉 채우는 몸이 겨우 한 줌 즈음 되는 뼛가루로 남는다는 게 신기했다. 그의 부모님이 우는 것을, 주변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지켜봤다. 자신이 죽어도 아무도 혼자 남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클로토는 슬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고인의 주변인이 죽음을 슬퍼하는 시간을 갖고 떠나보낼 수 있는 거라면, 당사자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미 죽은 이는 책을 쓸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으니 그건 오로지 제 몫이었다. 눈물 고인 얼굴로 애쉬의 손을 잡고 선 모르타를 관망했다

떠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아 있을 때는 방법을 모르는 일을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제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스스로 알아내야했다. 사람을, 이 장소를, 쥐고 있었던 것들을 놓아주어야했다. 살아있을 때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그래야 했다. 떠난 사람. 과거. 그게 클로토 페리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클로토는 떠난 사람, 이라는 단어를 입 속으로 굴리며 생전의 제 이름이 적힌 팻말을 바라보다가 실소했다. 그리고는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기분을 여행 짐처럼 품고 걸음을 옮겼다

그건 해방감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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